몇달 전에 프로젝트 투명성(Project Transparency)에 대한 글[1]을 올린 적이 있다. 당시에는 프로젝트에 투명성을 부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읽은 프로젝트 팀들에서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주길 바라며 글을 적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관리자들이 일부러 과제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감시 받는게 아니냐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운 실무자들도 아니고, 오히려 현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어할 듯한 관리자들이 도대체 왜? 지금부터 천천히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나는 Rational Team Concert (RTC) [2] 라는 Application Lifecycle Management 시스템은 팀 내에 소개/교육/운영하고, 몇 차례에 걸처 그 결과를 공유한 적이 있다. 당시 (지금까지도) 우리 팀은 과제 시작 후 크고 작은 릴리스 중 단 한 번도 목표일을 지켜본 적이 없었고, 지연 기간도 들쑥날쑥 예측이 어려웠다. 릴리스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서 ‘아! 이번엔 이만큼 지연됐구나’를 알 정도였다[3].
수 개월 동안 몇 차례의 릴리스 기간을 거치면서 RTC 가 보여주는 정보는 항시 일관적이고 명확했다. ‘현 상태로는 일정을 맞출 확률은 0% 이다.’ ‘당신의 팀은 task를 끝내기도 전에 끊임없이 새로운 task들을 더 추가한다.’ ‘당신 팀의 업무 수행 능력은 이 정도이다.’ ‘따라서 목표를 다 이루려면 x 일 정도 지연될 것이다.’ ‘일정에 맞추려면 a, b, c 등의 task 를 뒤로 미뤄야 한다.’ 이런 정보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실시간으로 그래프를 제시해준다. 대표적인 그래프인 burndown chart 의 예[4]는 아래와 같다.그림과 같이 프로젝트의 현 상황과 진행 추이, 예상 완료 시점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그래프를 전체 팀은 물론 서브팀별로 만들어주고, 누구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웹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Note: 위 그림은 우리 과제에서 얻은 실제 데이터 도, RTC 가 생성한 그래프도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 참고용이다. 또한 burndown chart 의 개념은 RTC 라는 특정 툴에 종속적이지 않다. Agile/Scrum 쪽에서 널리 활용하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으로 툴 없이도 쉽게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 RTC는 단지 이를 지원할 뿐..)
자!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가? 실무자들 중에는 사용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반면 관리자들 중에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그나마 계정만 만들고 실제 사용은 안함). RTC 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많은 변화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실무자들이 관심을 더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으로, 프로젝트의 목표와 일정을 세우고,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업무 부하를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들은 도데체 무엇 때문에 관심 자체를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실무자들이 쓰는 이유는 주로 이러했다.
- 자신에게 할당된 task 들을 효율적으로 관리/진행/보고하기 위해
- 상사의 말도 안되는 업무 요청에 대한 방어/협상 자료로 활용키 위해
- 내가 놀고 있나요? 그 일을 하길 원한다면, 여기 쌓여 있는 현 일들 중 어떤 것을 미룰까요?
관리자들이 쓰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쓰는 사람이 없으니 -_-a
그렇다면 관리자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물론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사람들마나 차이도 많다. (Note: 설문조사를 한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주변 정황과 평소의 대화들을 토대로 유추해본 것 뿐이다.)
- 현 상태에 만족해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해보았는데, 우리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모두가 불만이다.)
- 단지, 새로운 것을 익힐 심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제법 많다. 위에서 시키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할애하길 꺼려한다.)
- 다년간 체득한 ‘나서서 좋을 것 없다’ 는 경험 때문에 (조금 있다. 정말 좋으면 남들이 써보고 전파해주겠지 하는 생각.)
- 귀찮아서 (역시 제법 되어 보인다. 새로운 것은 익히기 보단 다소 불편하더라도 익숙한 것에 머무르려 한다. 시도조차 안해본다.)
- 투명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조금 있어 보인다. 이 글의 주제이므로 바로 뒤에 별도로 설명하겠다.)
- 기타.. (여러가지 더 떠오르지만 주제와 큰 관련이 없으므로 생략)
투명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위 지배층과 외부 사람들(stakeholder, customer 등)을 대하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투명한 과제가 장점을 발휘하려면, 그 과제가 정말 잘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산적한 상태에서 잘못 공개되면 지원이 줄어들고 대기 수요가 빠져나간다. 이들에게는 안좋은 것을 숨기고 희망찬 메시지만 전달해주어야 한다. 단번에 ‘3달쯤 지연될 겁니다’라고 얘기하면 ‘그렇게까지는 못 기다립니다’라고 하지만, ‘1주일만 더 기다려주세요’를 여러차례 반복하면 ‘이왕 기다린 거, 이번엔 꼭 된다니깐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등 돌리기도 늦은 것 같고..’ 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의도적으로 투명성을 제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근거는.. ‘팀 리더로써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부러뜨리지 않는 것’ 이라거나, ‘이런 건 누구누구가 알면 안되는데’ 라며 정보 공개를 불편해하는 발언 등을 하는 윗 사람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외부에 알려진 것 대비 심각하게 안좋은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정보를 숨기는 것은 과연 어떨까?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뒤에서 열심히 고생하는 개발자들과 이를 믿고 투자하는 사람, 제품을 기다리는 고객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투자자가 개발팀이 속한 회사 자체라면(내부 프로젝트), 그 팀은 프로젝트를 유지할 수록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다른 관점에서도 불투명한 과제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우리 팀의 모습을 앞서의 그림에 맞춰 비유해보면, 윗사람은 day 10 에 ‘자! 내일이 드디어 릴리스 날입니다. 오늘 저녁까지 남은 일들을 모두 완료해 주시고, 검증이 완료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세요.’ 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또 그것이 개발자들에게 먹힌다. ‘얼마나 걸릴까요?’ 라는 질문은 없다. ‘반드시 끝내세요.’ 라는 요청이 전부이다. 실무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놓고 표출하지도 못하고, 밤 늦게나 자정을 넘어서까지 일을 한다. 당연히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위와 같은 정보가 다 공개되어 있다면? 윗사람이 앞서와 같은 요구 자체도 할 수 없겠지만, 만약 그런 요구를 한다면 ‘당신은 눈이 없소?’ 라고 반박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즉 과제가 투명해지면 지금까지와 같은 무리한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이상의 이유들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제를 살리려 한다거나 전통적(?) 지배체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프로젝트가 투명해지는 것은 커다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진행상태를 숨길 수 있다.
만약 이런 현상이 정말로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개선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팀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아무리 제시해도, 개선의 움직임이 보이긴 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면 실무자들도 제풀에 지쳐 변화를 포기한다. 힘있는 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리: 관리자들 대부분이 이와 같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지만, 그 중 일부가 이런 생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비단 특정 팀이나 회사,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정보를 통제하는 언론, 기업의 홍보 부서, 조직의 대변인, 심지어 모든 사람 개개인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숨기는 대상에 외부 경쟁자들뿐 아니라 자신들을 믿고 따르는 조직원들까지 포함시켜 그들에게까지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런 조직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 부어줄까? 하나의 팀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References
- 프로젝트 투명성 (wegra.org)
- Rational Team Concert (IBM Rational)
- [나쁜 팀 문화] 점진적 지연 (wegra.org)
- Burndown chart (wikipedia)